
시드니에서 맞는 네 번째 아침이다. 창밖으로 햇빛이 쨍하게 쏟아지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매일 비슷한 날씨인데도 질리지 않는다. 오늘은 조금 일찍 눈을 떴다.
호텔 근처에서 커피와 크루아상을 사 들고 서큘러키 쪽으로 나갔다. 아침 공기가 상쾌해서인지 발걸음이 가볍다.
런닝하는 사람들, 캐리어를 끌며 지나가는 여행객들, 그리고 이른 시간에도 분주한 현지인들. 저마다의 아침을 살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 사이를 천천히 걷는다. 플랫 화이트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하고 부드럽다. 적당히 부는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기분을 맑게 한다. 크루아상 한 입을 베어 물자 바삭한 소리가 귓가를 채웠다.
이 단순한 순간이 여행의 묘한 즐거움이다.

오늘은 시드니 대학교로 가기로 했다. 서큘러키에서 조금 떨어진 뉴타운에 있다.
트램을 타고 창밖을 멍하니 보다가, 버스로 갈아타 캠퍼스에 닿았다. 방학이라 그런지 한적하다. 잔디밭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 조용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가장 유명하다는 쿼드랭글 시계탑이 멀리 눈에 들어왔다.
가까워질수록 사람 소리가 커졌다. 단체 관광객도 있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햇빛 아래 서 있었다. 주변 나무와 잔디가 어우러져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사진을 찍기에도, 그냥 걷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카메라를 꺼내 몇 장 담았다. 시계탑 아래에 잠깐 서서 올려다봤다. 오래된 돌의 결이 손끝으로 느껴질 것 같았다.
산책을 더 하며 캠퍼스 구석구석을 눈에 담았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기분이었다.
점심때가 가까워졌다. 배고프진 않았지만, 뭔가 먹고 싶었다. 뉴타운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마셀레리아라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동네 맛집 같은 느낌이 끌렸다. 메뉴판을 보니 스테이크 종류가 많았다. 고민하다 추천받은 걸로 주문했다. 사이드는 굳이 시키지 않았다.
스테이크 자체를 즐기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미디움 레어로 나온 고기를 자르며 냄새를 맡았다. 굽기와 간이 우리 입맛에 딱이었다. 가격도 나쁘지 않았다. 같이 먹은 라구 파스타도 괜찮았다. 진한 소스와 면의 조화가 입안에서 부드럽게 퍼졌다. 시드니에서 먹은 스테이크 중 여기만큼 마음에 든 곳이 없었다. 나중에 다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인테리어도 깔끔하고, 분위기도 조용히 밥을 먹기에 적당했다. 배고프던 차에 딱 맞는 식사였다. 포크를 내려놓고 창밖을 보니 햇빛이 식당 안으로 살짝 들어오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뉴타운을 더 걸었다. 골목마다 작은 가게들이 눈에 띄었다. 책방 앞을 지나며 잠깐 들여다보기도 했다. 하늘을 보니 경비행기가 ‘HYPE’라는 글자를 그리며 지나갔다.

별 의미 없는 광고였지만, 잠깐 멈춰서 그걸 바라봤다. 소음과 함께 하늘에 남은 흔적이 묘하게 기억에 남았다. 발걸음을 옮기며 뉴타운의 공기를 더 느껴봤다.
오늘은 좀 일찍 호텔로 돌아왔다. 수영장에 들어가 물에 몸을 담갔다.
따뜻한 물이 피로를 풀어주는 느낌이었다. 한참을 물속에서 놀다가 저녁은 룸서비스로 먹기로 했다.

포시즌스 룸서비스는 외식 물가를 생각하면 가격이 괜찮았다. 서비스도 마음에 들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창밖을 봤다. 해가 지며 하늘이 점점 붉어졌다. 음식이 도착했고, 맛은 무난했다. 한 번쯤 시켜 먹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마트에 들러 귀여운 콜라병을 발견했다. 작고 둥근 모양이 마음에 들어 다른 음료와 함께 집어 들었다. 방에 돌아와 병을 열고 한 모금 마셨다. 톡 쏘는 맛이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여행의 소소한 기쁨이 이런 데서 온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시드니는 나쁘지 않았다. 창밖을 보며 하루를 되감았다. 햇빛, 바람, 스테이크, 물결치는 수영장, 그리고 손에 쥔 작은 콜라병. 이 도시가 주는 어떤 순간들이 가만히 쌓이고 있었다. 잠이 들기 전,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될까 잠깐 떠올렸다.